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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시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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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넷 작성일18-10-30 13:02 조회1,2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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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 지리상 옥녀 탄금형 (선녀가 비파를 타는 형상), 금학 포란형 (금계가 알을 품고 있는 형상) 의 길지에 속하는 서산은 주산 옥녀봉의 그늘 아래
나래를 펼쳤다.

옥녀봉 이란 선녀가 산다는 선경을 의미한다. 즉, 속세를 떠난 청정한 곳을 말하며 우리 나라에는 강원도 고성군, 경남 함양군, 전북진안군등 7 ~ 8곳뿐인 명당. 서산의 터전이 된 옥녀봉은 예로부터 유택길지의 명당을 지녔으며 이 자리에 묘를 쓰면 입신양명하여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전해왔다.


그러나 사람들은 옥녀봉에 묘를 쓰면 개인은 잘 될지 모르지만 서산 주민 모두에게 화가 닥친다고 하여 서로 감시하곤하였다. 소아로 대아가 희생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런 중에도 20세기 초 서산에는 갑자기 전염병이 돌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주민들은 긴급 회의를 열어 옥녀봉을 확인하니 누군가 명당자리에 묘를 썼음을 발견했다.주민들이 암장된 산소를 파내 옮기자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는 일화가 오늘날 서산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지금도 주민들은 옥녀봉에 묘를 쓰지 않는다. 이같은 옥녀봉의 은덕이 내리 뻗은 곳이 서산의 옛 땅 「부성군」이다. 물론 서산은 삼한 시대 「치리국국」으로 출발, 백제 때에는 「기 군」이란 이름도 지녔다. 그러나 이들은 문헌상 확실하지 않고 통일신라 경덕왕때(755년) 부성군이 된 것이 연원으로 봄이 옳다고 생각된다. 「부성군」 은 옛 지곡면 산성리 부성산성 아래 자리 잡았다고 하니 지명을 부성산성에서 얻었다고 유추해석할 수 있다.부성군엔 진성여왕 7년(894년) 태수로 최치원이 부임하기도 했다. 부성군은 고려 인종(1123 ~ 1146)때는 현령을 두었다. 그러나 명종12년(1181년) 고을 사람 호장이 현령을 잡아 가두고 협박, 역모의 땅으로 낙인 찍히며 관호마저 제거 당하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부성군은 폐군이 되어 인근 운주에 붙여지는 것. 서산(부성군)이 다시 복군 된 것은 이후 1백 여년이 지난 충렬왕 13년(1284년)이다.충렬왕은 당시 주민 정인경이 괴산과 신창에 침입해 진을 친 몽고군을 습격, 많은 전과를 올린 것을 가상히 여겨 다시 회복 시켜 주었다.


부성군은 복군과 함께「서산군」으로 이름을 바꾼다.  아울러 지군사로 승격되었다가 충렬왕 34년 (1308년)에는 다시 「서주목」으로 승격하는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이같은 영화도 잠깐, 서산군은 충선왕2년(1310) 다시 「서령부」로 강등되었다가 다시 지서 주사로 강등되는 화를 입는다.
사학자들은 서산군의 잦은 강등과 복군 이유를지역주민들의 모 반이나 대역죄보다는 당시의 잦은 관체제 개편 때문으로 풀이 하고있으나 길지로써 지세가 센 탓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어쨌든 서산은 이후에도 조선 조에 이르기 까지 무려 7, 8차례 지위 격하와 복군의 성쇠를 반복 한다. 태종13년(1413년) 「서산군」 으로 회복한 이 땅은 숙종 21년(1695)강등되었다가 18 년 만에 다시 회복되었으며, 20년만인 영조 9년(1733) 또 다시 현으로 강등하는 것. 이어 9년 후 다시 군으로 회복한 서산은 다시 정조 원년(1777)현으로강등, 9년 후 복군 되었다가 융희원년(1914) 행정구역 개편으로 태안과 해미를 병합한다.이렇듯 역대 왕조의 관제개편에서 군세의 부침을 거듭한 서산은 이후 88 년 말까지 74년간 충남 제 1의 웅군으로 성장을 재촉, 길지로써 용트림을 시작했다.

이윽고89년1월1일 서산시로 승격한 서산은 서해안 시대라는 새로운 도약기를 맞고 있다. 사람들은 지금도 옥녀봉의 전설을 믿으며 새롭게 웅비할 서산시의 새 모습을 지켜가고 있는 것.서산 ! 상서로운 조짐의 땅.서산은 주산인 옥녀봉의 명당 전설과 함께 서해안 시대 국제적인 해안도시를 예견하고 있다.삼한 시대 기군으로 출발한 서산은 부성군이 되었다가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오늘의 이름을 얻고 세계화라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다시 서산시 로 승격, 오늘에 이르고 있다.분명 서산시는 인터넷시대에도 서해안을 대표하는 인터넷중심지로 발전할 것이며 서해안은 곧 세계의 중심을 이루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