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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역사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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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의 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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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넷 작성일18-10-30 10:58 조회9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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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시지역은 선사시대이후로부터 한반도에서 가장 살기좋은 땅으로서 구석기시대에도, 신석기시대에도,청동기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던 땅이다. 삼국시대에는 중국과 일본, 동남아와의 해상요충지로 백제가 중국의 동부지역 전역과 동남아 지역 그리고 일본지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던때의 해상요충지였다. 하지만 백제 멸망의 과정에서 백제부흥운동이 있었고 서산을 비롯한 충남 서해안지역은 그 중심지로서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에 의해 빛나는 역사와 문화가 한꺼번에 초토화되어 기록으로 남겨지지 못하다가 최근 서산시 전역에서 이루어지는 유물발굴로 인하여 백제 왕실에 버금가는 문화세력의 중심에 서산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서산시가 문헌상에 나타난것은 삼한시대에 마한에 속하였고 백제시대에는 기군(基郡)에 속하였으나 백제왕실과 대등한 관계의 세력으로서 존재했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부성(富城), 정해(海),여미(美)지역이 있었는데 부성(富城)은 인종21년[1143]년 부성현[富城縣]으로 승격되었으나 주민들이 현감을 죽임으로서 현이 페하였고 여미현의 지배를 받았다. 여미현 또한 현 서산시의 일부이다. 충렬왕10년[1284]에 고려에 큰공적을 세운 정인경선생의 덕분으로 서주군(瑞州郡)으로 승격하였으며 현 서산지역으로 충렬왕34년[1308]에는 서주목(瑞州牧)으로 승격되었다가 충선왕 2년[1310]에 서령부로 강등 되었고 이후 1362년 서령군(瑞州郡)으로 바뀐 뒤 계속 사용되다가 이후 조선조에 와서 태종 13[1413]에 서산군[瑞山郡]으로 고쳐졌으며 서산시로 승격되는 1989년까지 사용되었다.

 시대

 년도

명칭 

 삼한시대


  마한의 기군(基郡)

 통일신라시대

 

  부성군(富城郡) 

 고려시대

1143년

  부성현[富城縣, 인종21년) 

 

1181년

  페현

 

1284년

  서주군(瑞州郡)

 

1308년

  서주목(瑞州牧)

 

1362년

  서령군(瑞寧君)

 조선시대

1413년

  서산군(瑞山郡)

 

1989년

  서산시(瑞山市)



1989년 서산시로 승격되는 지금의 서산시는 삼국시대에 가장 강성하고 많은 영토를 영위하며 가장 훌륭한 문화를 꽃피운 백제문화의 중심에 내포지역이 있고 그중 서산시는 가장 훌륭한 문화를 지녔던 곳으로 훌륭한 선조의 얼을 이어 받아 21세기 서해안시대의 새로운 내포지역문화의 융성으로 대한민국의 번영에 이바지 하리라 기대해본다.